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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로그

<생각로그> 유'성'생식

by notom 2020. 9. 23.

 우리는 왜 남자와 여자로 나누어 졌을까? 왜 하필 성은 2개일까? 

 우리는 그동안 '성'을(남성 여성으로 양분됨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 왔다. 사실 생각해보면 '성'은 당연하지 않다.

 우리가 성을 당연히 생각해 왔던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주변에서 우리와 늘 함께 살고 있는 대부분의 생물들이 다 유성생식을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일단 인간 종이 속해 있는 포유류는 전부 유성생식을 한다. 인간 사회에는 태어날 때부터 또는 호르몬 치료나 성형수술을 통해 헤르마프로디토스의 형상을 갖춘 이른바 'shemale'(여남)이 있기는 하지만, 기능적으로 완벽한 암수한몸(hermaphrodite)인 경우는 적어도 포유류에서는 아직 밝혀진 바 없다. 포유류 뿐만이 아닌 파충류, 조류, 어류 등 모든 동물들, 심지어 식물들과 균류, 진핵생물들의 절대다수가 모두 유성생식을 하기 때문에 우리는 성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성의 진화'가 생물학계에서 큰 의문과 이슈로 떠올랐다. 이 배경에는 무성생식에 비해 유성생식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불리함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곰곰히 생각해보면, 유성생식은 무성생식에 비해 어떤 이점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선택압이 작용하여 이토록 모든 생물들에게 진화하여 발현되었는가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먼저 유전자 입장에서 보면 유성생식은 유전체 그 자체에게는 엄청난 손해이다. 유성생식에서 유전자는 자식세대를 만들어 낼 때마다 본인의 절반을 잃는다. 반면에, 무성생식을 하면 유전체 그대로 다음세대에 전달된다. 뭔가 이상한 점을 눈치 챘는가?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식물들은 유전자의 자기복제를 돕기 위한 생존기계들 아닌가. 진화란, 유전자를 후대에 잘 전달하기 위해 개체를 변형시켜 나가는 과정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유성생식은 진화과정에서 출현할 수 없는 생식방법 아닐까?

 또한, 반대로 유성생식을 하는 집단에서 무성생식으로 진화하는 상상을 해보자. 어떤 유성색식 집단에서 한 개체에게 돌연변이가 발생하여 배우자의 유전자와 결합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유전자만으로 자식을 만들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그 개체가 낳은 자식들은 부모 개체와 동일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자식들도 동일한 유전자를 또 자손들에게 남길 것이다. 몇 세대만 지나면, 이 유전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며 애써 다른 성을 낳아야 하는 부담이 없어서 세대를 거듭할수록 적어도 양적으로는 엄청난 유전적 이득을 얻게 된다.

 게다가 무성생식은 유성생식보다 훨씬 경제적으로 보인다. 우리를 비롯한 모든 진핵생물들은 유성생식 때문에 짝짓기를 하기 위해 실로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며 노력을 기울인다. 짝을 찾기 위해 이성에게 자존심을 팔아가며(ㅠㅠ) 구애활동을 펼쳐야 하고, 때로는 수컷 꿩의 화려한 꼬리, 혹은 곤충의 울음소리처럼 이성에게 나를 어필하기 위해 포식자에게까지도 나를 드러내는 위험을 감수하며 생존에 불리한 전략을 펼치기도 한다. 식물들도 예외가 아니다. 때로는 짝짓기를 위해 본인에게는 굳이 필요없는 꿀을 만들어 곤충들을 유인하고, 때로는 생식을 위해 새를 유혹하기도 한다(이 과정에서 생을 마감하는 꽃들도 많다).

 또한, 성은 왜 하필 2개인가? 한번 상상해보자, 만약 성이 3가지라면? 4가지라면? 만약 100명이 살고 있는 마을에 성이 2가지라면 50명이 남자고 50명이 여자다. 그렇다면 남자인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짝짓기 상대는 50명이다. 하지만 성이 3개라면 66명중에 선택할 수 있고, 4개라면 75명중에 선택할 수 있다. 성의 종류가 많아질수록 짝짓기 확률은 올라가며, 짝짓기를 상대를 찾기 위해 소모해야하는 에너지도 적어진다.

 무성생식은 사적이고, 직접적이고, 안전하고, 에너지면에서 값싸고, 이기적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유성생식(양성)으로 진화가 일어난 원인은 무엇일까?

 

 많은 생물학자들이 유전자 풀에 다양성에 기원하여 자연선택에 유리해지기 위해서 유성생식은 탄생했다고 말한다. 유성생식은 유전자의 조합이 무궁무진 하다. 전세계 인구는 70억명이지만, 이 중에 나와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확률상 없다. 이러한 유전자의 다양성은 우리 집단의 생존율을 매우 높인다. 주변 환경이 갑자기 변했을 때, 유전자 조합이 많지 않고, 그 조합들이 변화한 환경에 모두 적합하지 않다면, 그 종은 멸종한다. 무성생식의 경우, 개체의 유전자가 그대로 후세에 전달되므로 유전자적 다양성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무성생식도 돌연변이가 발생하기는 하겟지만, 무성생식의 특성상 그 돌연변이가 주변환경에 적합하지 않을 경우 그 개체군은 바로 자연에서 삭제당하기 매우 쉽다.

 또한, 유성생식은 무성생식에 비해 유리한 돌연변이 조합을 더 용이하게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에 유성생식 개체군은 무성생식 개체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화할 수 있다. 유전적으로 경직되어 있는 무성생식 개체군은 환경의 변화에 신속하게 적응하지 못하여 절멸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무성생식을 하는 생물들은 일단 만들어진 불리한 돌연변이를 제거할 마땅한 방법을 갖고 있지 않은 반면, 유성생식을 하는 생물은 유전자의 결함을 수정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환경 변화에 보다 강력한 저항력을 가진다.

 최근에 성의 진화에 가장 강력한 가설은 기생충 가설이다. 대부분의 기생생물들은 세대가 짧고 무성생식을 하기 때문에 매우 빠른 속도로 새로운 ‘공격무기’를 개발해 숙주생물을 공격한다. 숙주생물이 이에 맞서는 방법으로 진화한 것이 바로 성이라는 가설이다. 유전자 재조합을 통해 유전적으로 다양한 자손을 생산하면 기생생물의 공격무기를 무력화 할 수 있다. 물론 기생충도 또 다시 변형한 유전자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공격무기를 개발하겠지만, 유성생식은 무성생식보다 더 빠르게 새로운 방어체계를 구축해 낼 수 있다. 유성생식이 유전자 군비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것이다. 진핵세포의 출현이 원핵세포들끼리의 공생(기생)관계에서 출발한 것을 보면, 우리는 기생으로부터 시작됬고 기생으로부터 진화하였으며 결국 어딘가에 기생하는 것이 인생인가 싶기도 하다.

 하필 2가지 성이 발현된 원인에 대해서는, 우리의 기생생물 중 하나인 미토콘드리아에 의해 설명되곤 한다. 미토콘드리아의 DNA 보존을 위해, 생식세포중의 한쪽(난자)은 운동성을 가지지 않는 것이 진화의 단계에서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가설이다.

 

 이렇게 우리는 남자와 여자가 되었다.(여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읽어주셔서 감사하다..)

 우리는 지난 40억년동안 자연의 선택압에 의해 끊임없이 진화되고 또 진화되어왔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기나긴 지구의 역사 속에서 처음으로 진화압을 이기려는 생명체를 지켜보고 있다. 인간에게는 더 이상 선택압이 없다. 진화론 적인 적자생존도 지금의 인류에게는 적용되기 힘들어 보인다. 많은 인간들이 닥치고 번식하라는 이기적인 유전자 놈의 명령을 거역하고 있고, 쾌락하라는 명령도 무시하고 고행을 기꺼이 택하기도 한다.

 가끔 더욱 더 용감한 사람들이, 더 이상 유전자의 생존기계로 사는 것을 탈피하고, 본인의 성 정체성을 본인이 선택하고, 본인이 사랑할 성을 본인이 선택하고, (때로는 무성욕자와 무성애자가 되고) 또 때로는 본인의 죽음을 본인이 선택한다.

 생존기계들이여, 우리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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